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가시쿠니 시게코 (문단 편집) == 병과 사망 == [[파일:attachment/히가시쿠니 시게코/michi1.jpg]] [[1964년]], 첫째 [[시누이]] 시게코의 3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미치코 황태자비. 당시 남편 아키히토 황태자, 시아버지 쇼와 덴노[* 나가코 황후가 장남 아키히토 황태자와 쇼다 미치코의 결혼을 반대할 때, [[쇼와 덴노]]는 "황실에도 새로운 신붓감이 필요하다"며 사실상 두 사람의 결혼을 찬성하며 큰며느리를 두둔했다. 미치코가 약 40여년 동안 지옥같은 시집살이를 겪었을 때도 미치코를 위로해주며 나가코 황후와 미치코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.], 그리고 자식들을 빼곤 황족들과 화족들 거의 전부에게 핍박당하고 견제받던 미치코 황태자비로서는, 일본 황실 내에서 유일하게나마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던 시누이 시게코의 죽음이 안타깝기 그지없었을 것이다. [youtube(fqVK7BpxlNc)] ||시게코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.||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[* [[홍콩]], [[싱가포르]] 등으로 해외여행도 다녀왔다고 한다.]되었나 싶을 무렵인 [[1960년]], 시게코는 '''[[암]]'''에 걸렸다. [[수술]]을 시도했으나 이미 [[의학]]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말기 상태였다. [[천황]] 부부는 시게코를 [[궁내청]]병원으로 옮겨 거의 매일 문병했고, 나가코 황후는 [[희망고문|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느 황족으로부터 소개받은 주술사까지 불러왔으나]] 될 리가 없었다. [[1961년]] [[5월 7일]], 시게코는 친정아버지 쇼와 덴노의 [[환갑]]잔치에 참석했으나, 몸이 너무 쇠약해져 연회 내내 누워 있어야 했다. 이것이 최후의 외출로, 결국 시게코는 남편과 아이들, 그리고 친정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'''[[7월 23일]] 세상을 떠났다(향년 만 35세).''' 시게코의 장례식은 [[아오야마]]에서 거행되었고, 시신은 화장되어 [[도쿄도]] [[분쿄구]]의 도시마가오카(豊島岡) 묘지에 안장되었다. 나가코 황후는 시게코의 무덤 곁에, 시게코의 공주 시절 오시루시인 [[매화나무|홍매화]]를 심었다. 쇼와 덴노와 나가코 황후는 큰 충격과 슬픔에 잠겼으나, 지난 해에 태어난 장손 나루히토 친왕을 위안삼아 이겨냈다고 한다.[* 나가코 황후를 비롯한 황족들과 화족들은, 시게코가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을 두고 "여자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!!!"며 말도 안 되는 [[미신]]적인 트집을 잡아 미치코 황태자비를 비난했다. ~~남한테 화풀이~~] 시게코가 죽은 후 [[히가시쿠니 모리히로|모리히로]]는 데라오 요시코(寺尾佳子)라는 여성과 [[재혼]]하여 아츠히코(厚彦)와 모리히코(盛彦)라는 두 아들을 더 낳았지만, 그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한지 약 6년만에 총 5남 2녀의 자녀를 두고 [[1969년]], 자신의 아버지이자 시게코의 시아버지인 나루히코보다 20년 일찍 사망하였다. 시게코의 사후 40년이 되는 [[2001년]] [[7월 23일]], [[남동생]] 부부인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가 시게코의 묘지에 참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